
2011년, 제가 사업자를 낸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입니다.
어느 날 벤츠 S클래스를 타고 나타난 한 중년 남성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준비 중이던 카페 사업과 관련된 백화점 투자 건으로
스쳐 지나가듯 연결된 인연이었습니다.
그 남성은 강남 어딘가에 작은 건물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을 법한,
말 그대로 ‘졸부’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첫 만남부터 지나치게 드러나는 거만함 때문에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공기가 불편할 만큼 어색했고,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그가 아무렇지 않게 꺼낸 한마디는
지금도 여전히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절대 현대차 안 타.
그리고 취업 준비하는 자식들한테도
현대에는 원서조차 못 내게 해.”
이유를 묻자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정주영 회장 알지?
그 사람 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네 머슴이었어.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항상
‘머슴 집안에 가서 머슴살이할 필요 없다’고 하셨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고 정주영 회장을 마치 업신여기듯 무례한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말투 하나, 손짓 하나, 표정 하나까지
그가 가진 졸부 특유의 기류는 조금도 숨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현실은
점점 줄어드는 자산 때문인지 그리 여유롭지 않아 보였고,
문제가 되었던 백화점 투자건 역시
끝내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는 자신 대신 한 명의 대표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그 대표자는 결국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고,
재판 과정에서 사기 전과가 이미 세 번이나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중년 남성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 대표자의 전과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약 1년쯤 뒤,
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업 초기에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증인으로 참석했고, 그 과정에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때 ‘양반집의 후손’임을 자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아버지를 머슴으로 부렸다는
거대했던 집안의 자식은
세대를 거치며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고,
반대로
가진 것 하나 없고, 배우지도 못했던 정봉식 씨의 아들이었던
정주영은
아버지에게 “그냥 농사나 지으며 살아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결국 대한민국 최고의 부를 이룬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이에나는 100마리가 넘는 무리 속에서도
철저한 계급 구조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계급은 세습되어,
높은 계급의 하이에나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는
자연스럽게 그 지위를 물려받습니다.
사냥은 주로 낮은 계급의 하이에나들이 담당하고,
높은 계급은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계급은 영원하지 않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뒤바뀌는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생에서의 계급은 결국 ‘강인함’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높은 계급의 하이에나는 태생적으로 좋은 위치에서 시작하지만,
위험한 사냥과 치열한 전투는 대부분 낮은 계급이 담당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낮은 계급의 하이에나는
수없이 부딪히고, 싸우고, 살아남으며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충돌이 벌어졌을 때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며 강해진 하이에나가
기존의 지배 계급을 밀어내고
계급이 뒤집히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요즘 기업의 흥망성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수백 년 동안 부를 대물림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창업한 지 불과 10년, 20년 만에 세계 최고 부자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인간 야생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온실 속에서만 자란 부자의 2세는
전투력을 잃은 하이에나처럼
언젠가는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순간을 맞을 수도 있고,
반대로 흙수저로 태어나 가진 것 하나 없이 출발했더라도
그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탁월한 전투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지배 계층으로 올라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이
유난히도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야.”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니면,
스스로 싸우기를 포기한 사람들만의
또 하나의 위안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