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0년 전 이야기네요. 우리나라에도 소셜 커머스 열풍이 한바탕 불어 닥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그루폰이 한국에서도 큰 이슈가 되면서 너도나도 소셜 커머스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티켓몬스터, 위메이크프라이스, 그리고 쿠팡입니다.
당시 이 업체들은 공짜 쿠폰, 반값 쿠폰을 남발하면서 엄청난 고객들을 끌어모았지만 그 할인 부담을 대부분 힘없는 개인 사업자들에게 떠넘기면서 서비스와 질은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어떤 식당은 아예 티몬 전용 메뉴판이라는 걸 따로 만들어서 쿠폰으로 주문하는 메뉴는 양을 줄이거나 가격을 높여서 손실을 메우기도 했고 그걸 알게 된 고객들은 더 이상 쿠폰을 사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저도 당시 티몬에서 구매한 여행 티켓이 엄청난 바가지라는 걸 알고 환불을 요청했는데 환불받는 데만 무려 6개월이 걸렸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해서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2015년경 우후죽순 생겨난 수백 개의 소셜 커머스 업체들은 눈 녹듯 사라졌고 앞서 말한 메이저 3사 정도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조차 하루가 멀다 하고 적자 행진이라는 뉴스가 쏟아졌고 소비자들은 곧 망해서 사라질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 소셜 커머스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지고 이들은 오픈마켓 형태로 변신하면서 기존의 옥션, 지마켓과 경쟁 구도를 만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자리 잡은 옥션, 지마켓, 11번가는 쇼핑의 강자로 버티고 있었고, 뒤에는 SK텔레콤이나 이베이 같은 든든한 뒷배가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쟁쟁한 시장에서 쿠팡은 언제나 가장 큰 적자 규모로 뉴스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2015년 쿠팡은 감당하기 힘든 적자가 쌓여가고 있었는데 이때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과감하다 못해 무모하다 싶은 1조 1300억 원을 투자하며 기업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냈습니다. 사람들은 손정의 투자가 무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국 알리바바의 엄청난 성공을 만들어낸 사람이라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돈을 받고도 쿠팡은 단 한 번의 흑자도 내지 못했고 또다시 위기설이 불거진 2018년, 투자한 손정의 회장만 불쌍하게 됐구나 싶을 즈음 그는 지난번보다 더 큰 2조 2600억 원을 재투자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적자만 내고 있고, 내일 당장 문 닫아도 이상할 게 없는 회사인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정도가 있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2018년 쿠팡의 지표에서는 다른 기미가 보였습니다. 회사는 적자인데 매출은 4조 원을 넘긴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적자 속에서도 매출이 폭발하는 이유를 쿠팡의 로켓 배송과 직접 물류 시스템 덕분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엄청난 적자만큼이나 매출도 늘어난 2020년. 드디어 쿠팡에서 상장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0년 적자 기업이 무슨 상장을 한다는 거지?

모두가 의아해할 때 쿠팡이 쳐다본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습니다. 아니, 토종 브랜드 쿠팡이 고향에서도 인정을 못 받는데, 깐깐한 미국 시장에서 통할까? 다들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시가총액 무려 100조 원. 쿠팡이 상장하고 최고 가치 100조 원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장 심사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적자 기업이 미국에서는 100조 원? 이건 엄청난 뉴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 한국이 보는 쿠팡과 미국이 보는 쿠팡이 이렇게나 달랐던 걸까요? 분명 한국의 눈이 틀렸거나 미국의 눈이 틀린 것, 둘 중 하나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과연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주식시장이 틀렸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왜 쿠팡의 기업가치를 100조 원까지 봐준 걸까요. 이것은 현재의 수익을 위주로 평가하는 한국의 기업가치 기준과 미래의 잠재 가능성을 가치로 평가하는 미국의 기업가치 기준의 차이입니다.
한국은 보통 PER를 기준으로 합니다. PER가 뭐냐, 쉽게 이야기하면 장사 잘되는 카페가 한 달에 10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카페의 권리금은 보통 1억 원 정도 됩니다. 순이익 1000만 원의 10배, 즉 PER가 10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쿠팡은 PER로 가치를 매기자면 영업이익이 0원이니 기업 가치도 0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PSR, 즉 주가 매출 비율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보통 PSR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는 매출의 4배 정도를 쳐주는데 올해 쿠팡의 예상 매출이 26조 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매출의 4배인 약 100조 원 정도로 기업 가치를 책정한 것입니다.
이번 쿠팡의 미국 상장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많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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