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습니다.
탑승해 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괜히 마음이 살짝 긴장됩니다.
“제발 옆자리에 좋은 분이 앉으셨으면…”
혼자 속으로 조용히 바라면서 말이죠.
제 자리는 창가 쪽이었고,
잠시 후 중년의 노부부가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제 바로 옆에 앉은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자리에 앉자마자 팔꿈치로 제 팔을 세게 한 번 쳤습니다.
‘아… 실수겠지.’
그렇게 넘기려는 순간,
또 한 번 팔꿈치가 제 팔을 건드렸습니다.
‘아… 이분 좀 조심성이 없으시네.
오늘 비행, 조금 불편하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비행기는 이륙했습니다.

어느 정도 고도가 올라갔을 때,
승무원이 통로를 지나며 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딱히 목도 마르지 않았고,
종이컵을 받아드는 것도 귀찮아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앉은 그 남성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반쯤 남은 종이컵을 제 간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응…? 이건 무슨 행동이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한마디 하려던 그 찰나—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그 남성의 손등을 탁 하고 세게 쳤습니다.
남성은 그제야 놀란 표정으로 제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종이컵을 얼른 들어 올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 옆에 앉은 그 60대 남성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분이었고,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누나나 여동생쯤 되어 보였습니다.
자리에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던 행동들,
팔꿈치로 자꾸 제 쪽을 건드리던 일,
종이컵을 제 테이블 위에 놓아두던 순간까지…
저는 속으로
‘아… 이번 비행 5시간, 정말 힘들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폐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마음속에 차 있던 화가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전까지 이해되지 않던 모든 행동들이
그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남성은 비행 내내 제가 보던 넷플릭스를 보겠다며
제 휴대폰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드라마가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저는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면 다시 제 테이블 위에 휴대폰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은 옆 사람이 살짝만 건드려도 금세 신경이 날 때가 많은데,
‘불편한 이유’를 아는 순간, 그 불편함은 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많은 순간들 속에는,
그 사람 역시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미 불편한 상태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시선으로 누군가를 한 번만 더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느꼈던 나의 불편한 마음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