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일상의행복

  • 행복이란…. 그리 크지도 대단하지도 않으며 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야간 행군

    백령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야간 행군을 할 때의 일입니다.

    야간 행군이란 말 그대로 한밤중에 행군을 하는 것인데, 백령도에서의 행군은 가로등 하나 없는 아주 새까만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 손바닥을 눈앞에 대어 보아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 같은 그런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에너지도 모두 소진된 몸에 무거운 완전 군장을 메고, 그저 바닥만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한없이 걸어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문득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어? 이게 무슨 냄새지?’

    아주 기분 좋은 향기였습니다.

    ‘누가 향수를 뿌렸나?’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너무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누구의 향수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극도로 힘든 상황 속에서 맡게 된 이 향기가 참 좋았습니다. 켜켜이 쌓인 피로마저 눈 녹듯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더 걸어가도 그 향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로 우리를 비추며 지나갔습니다. 밝아진 시야로 주변을 돌아보니, 제가 걷고 있는 그 깜깜한 길 옆이 온통 나팔꽃 밭이었던 것입니다.

    아.

    화려한 장미꽃도 아니고, 값비싼 향수는 더더욱 아닌, 길가의 흔한 나팔꽃 냄새가 그토록 향기로웠던 것입니다.

    어쩌면 행복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 크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것.

    그저 내 바로 옆에 있는 평범한 것들도, 마음의 눈을 감고 온전히 느끼려 해보면 그것이 바로 행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질보다 양

    오늘 사무실 서랍 정리를 하다가 1년 전 잃어버린 맥북 에어 연장선을 찾았습니다.

    작년 봄 홍콩 출장을 갈 때 꼭 필요해서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가며 찾았는데도 보이지 않던 물건이었습니다.

    다시 사려니 돈이 아깝고, 없이 쓰자니 너무 불편하고, 혹시 누군가 가져간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던 바로 그 연장선입니다.

    다시 보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이렇게 묻더군요. 너는 평생에 대박 나는 사건 하나가 일어나는 게 좋겠어, 아니면 지금처럼 소소한 행복이 계속 이어지는 게 좋겠어?

    음,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연히 이런 소소한 행복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거창한 성공만을 좇느라 정작 이런 소소한 행복을 눈치채지 못한 채 너무 힘겹게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 감사가 일상이 되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며칠 전, 아파트에서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양손 가득 분리수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쓰레기장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온 참새 한 마리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벽에 부딪히며 계속해서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순간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크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거의 1.5미터 높이에서 굴러떨어지듯 넘어진 바람에
    어깨와 무릎에 강한 통증이 몰려왔고,
    한동안은 앉아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뼈라도 다쳤겠다 싶었는데,
    다행히도 큰 부상은 없고 찰과상 정도에 그쳤습니다.

    ‘아…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오늘 크게 다칠 뻔했어”라며 상황을 이야기하자,
    아내도 놀라며 깊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렇게 물었습니다.

    “근데… 그 참새는 어떻게 됐어?”

    저는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 참새를 아파트 출구 쪽으로 살살 유도해서
    밖으로 내보내 줬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너무 다행이다,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참새 때문에 넘어져 다쳤는데도
    화내지 않고 일부러 신경 써서 내보내 줬다는 게
    고맙고 기특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문득 그 상황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는 왜 그 참새를 굳이 내보내 줬을까?’

    사실 제가 크게 넘어졌을 때,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아… 우리 제이를 안고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당시 제이는 생후 9개월 된 아이였고,
    그 계단은 제가 아이를 안고 산책을 다닐 때
    늘 오르내리던 계단이었습니다.
    만약 그날, 제이를 안고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넘어진 이유를 가만히 되짚어보면,
    걷다가 한눈을 팔았고,
    운동화 끈도 제대로 조여 매지 않았고,
    요즘 들어 운동신경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한 번쯤 넘어질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와…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마음 깊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던 길에,
    아마도 저는 그래서
    그 참새를 좋은 마음으로 밖에 내보내 줬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표정이 너무 좋아졌어요.”
    “얼굴이 정말 편안해 보이세요.”

    사업을 하며 살아오는 동안
    저는 늘 예민했고, 신경질적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스스로도 잘 모르게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매사에 감사한 일을 더 먼저 떠올리고,
    부정적인 상상보다는 긍정적인 그림을 더 자주 그리게 되었고,
    사람을 만나도 단점보다 장점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제가 일부러 노력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분명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는지는 저조차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감사하며 사는 삶’이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며 살기’라는 것이
    의식적으로 마음먹어야만 가능한 일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삶의 태도로 스며드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어떤 계획이나 의도를 가지고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 마음을 갖게 되는
    분명한 방법이나 공식 같은 것이 있다면,
    정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방법을 모르니,
    그저 조금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만약 ‘감사하며 사는 태도’가
    억지로 만든 다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모습이 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장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은…
    결국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