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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위험한 글…..

    20대 초반의 새까만 후배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후배가 기특하게도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저축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최대한 아껴서 월 15만 원 정도를 저축했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서도 돈 쓸 일을 최대한 줄여 월 40만 원 정도를 저축해 벌써 800만 원이라는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하. 갈등이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이 기특한 절약 정신을 그저 칭찬해 주어야 하나.

    결심했습니다.

    ‘내 생각을 말하자. 남의 인생이라고 그저 좋게 칭찬하고 넘어가기보다, 나중에 원망을 듣더라도 내 진심을 말해주자.’

    “정말 절약하면서 열심히 모았구나. 그런데 너, 그렇게 돈을 모으면 내년에는 더 행복해지는 거야?”

    “네?”

    “네 통장 잔고가 내년에 1,600만 원이 되면 넌 행복해지는 거야? 아니면 3,200만 원이 되면 행복해질까? 나는 네가 그 황금 같은 20대를 오직 저축하는 데만 쏟아붓느라, 정작 세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20대에는 너무 저축만 하지 말고, 그 돈으로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연극도 보러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위험하다. 이런 말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 친구의 투철한 절약 정신마저 허탕으로 날려버리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이 제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0대에 조금씩 돈을 저축한다고 해서 내가 당장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이 극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20대에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다양한 사람과 만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진짜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8살이라는 나이에 전 재산 2,500만 원을 들고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어학원에서 1,000만 원을 쓰고, 남은 1,500만 원은 미술관, 박람회, 박물관, 유명 맛집을 돌아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온전히 저의 경험을 쌓는 데 다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경험 끝에서 창업이라는 소중한 기회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잡기에 능한 사람이 인정 받는 시대

    미술 학원을 다닐 때 어느 동생이 기타를 가지고 왔다. 미술 학원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생소한 모습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감탄할 때, 기타를 연주하던 학생의 친구가 그를 칭찬하며 말했다.

    “현우는 못하는 게 없다니까.”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이 비꼬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우는 못하는 것도 없지만 제대로 하는 것도 없잖아.”

    선생님은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면 미술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30대 초반, 한 회사의 기획팀을 맡고 있을 때였다. 꽤 오랜 기간 디자인과 기획을 담당해 온 나는 그 분야에서는 나름 베테랑이었지만, 사실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영업 부서의 업무가 무척 궁금했다.

    ‘도대체 저 부서는 어떤 일을 하는 거야?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고 계약은 어떻게 따내는 거지?’

    고민 끝에 마침내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가 찾아왔다. 주말 없이 근무하던 영업 과장님이 이번 주 토요일에 부산으로 영업 상담을 가게 된 것이다.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과장님께, 혼자 그 먼 길을 운전하면 위험하니 교대로 운전해 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이 얼마나 회사를 위하는 훌륭한 봉사인가.

    하지만 나는 순수하게 봉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왕복 10시간 동안 영업 과장님과 독대하며 상담을 하고, 브리핑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해 도장을 찍고 수정하는 그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주말마다 영업부의 업무를 하나씩 습득해 나갔고, 그런 식으로 관리부와 물류부의 업무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몇 년 뒤 창업을 결심했을 때, 그때그때 배워둔 업무들이 초기 인건비를 줄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많아야 한다.

  • 보는 것과 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난생처음 스키장이라는 곳에 가봤습니다.
    그때 겪었던 두 가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나는 스키장 눈이 생각보다 푹신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가 스키를 전혀 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키장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하얀 설원 위를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스키를 신고 눈 위에 서니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머릿속 상상과 실제 현실의 엄청난 괴리에 당시에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죠.

    스타트업 중에서 창업 후 수개월 만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회사들의 흥미로운 공통점 하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창업자인 CEO가 전 직장에서 부대표 역할을 했던 경우입니다.

    부대표 자리에 있던 사람은 대표이사의 최측근으로서 창업 초기부터 회사가 성장해 나가는 모든 경영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누구보다 창업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회사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지켜본 부대표는, 자신이 대표이사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과 직접 해본 것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예상하지 못한 채, 자신의 실제 역량을 과대평가하여 창업 초기에 뼈아픈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가진 경험이 그저 옆에서 지켜본 경험인지, 아니면 내 손으로 직접 부딪혀 이뤄낸 경험인지 냉정하게 구분하는 것.
    사업에서는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끝으로 깨알 홍보 하나 덧붙이자면, 저희 씨부떡이 오크밸리에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이 다르듯, 직접 오셔서 맛보시면 확실히 아실 겁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아무렇지도 않게 절실함을 가지라고 하지 마세요

    어떤 분들은 청년들에게 훈계하듯 말합니다. “너희는 왜 이렇게 절실함이 없냐?” “절실함 좀 가져라, 절실함을!”

    이런 무책임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요즘 애들은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배가 부르니까 절실함이 없어.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맞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먹고사는 생존 문제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만큼 절실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은 밥 한 끼에 대한 처절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절실함을 가져라’라는 조언은 방금 물을 마신 사람에게 “목마름을 느껴봐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목이 마르면 본능적으로 물을 찾게 되고, 물이 없으면 땅을 파서라도 물을 만들어 낼 방법을 찾습니다. 하지만 갈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물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느껴보라”고 한다면 과연 그게 의지로 가능한 일일까요?

    그럼 한번 실험해 봅시다.

    우선 아주 시원한 얼음물을 한 컵 들이키세요. 마셨나요? 네, 그럼 이제 우리는 마음속 깊이 ‘타는듯한 갈증’을 느껴보겠습니다.

    시작! …………… 자, 갈증이 느껴지시나요?

    절실함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

    절실함은 ‘다짐’이 아니라 ‘감정’이고 ‘상태’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억지로 사랑하거나 억지로 슬퍼할 수 없는 것처럼 절실함 또한 선택적으로, 내 의지로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너는 왜 절실함을 안 가지냐”라고 다그칩니다. 이것은 “야 이 멍청아”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니까요.

    절실함을 가지라고 호통치는 당신. 당신은 과거 언젠가 뼈저린 절실함을 가졌을 겁니다. 그래서 그 기억으로 후배에게, 직원에게, 타인에게 그 에너지를 가지라고 하는 것이겠죠.

    자, 그럼 한번 되돌아봅시다. 당신은 당신이 원해서 그 절실함을 가졌나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자, 오늘부터 절실해져야지!” 하고 마음먹어서 절실해졌나요?

    아닐 겁니다.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건 상황이 당신을 절실하게 만든 것이고, 당신은 그 상황이 던져준 절실함을 온몸으로 받아냈을 뿐입니다.

    그 절실함이라는 것은 두 가지 경우에 옵니다.

    첫째, 너무나 가혹한 위기가 닥쳐서 그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생긴 겁니다. 즉, 위기가 왔기에 절실함이 따라온 것입니다.

    둘째, 내가 가지고 싶은 무언가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것을 너무도 갖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절실함이 생긴 겁니다. 이 역시 ‘매력적인 대상’을 먼저 발견한 게 우선이고, 그다음이 그것을 갈구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누군가가 밑도 끝도 없이 “절실해져라”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해서 없는 절실함이 솟아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절실함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형 절실함은 위기가 오기 전에는 절대 생길 수 없으니, 일부러 위기를 자초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자 하는, 이루고자 하는 ‘성취형 절실함’은 노력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많은 경험’과 ‘정보 습득’입니다.

    내가 만약 부자가 되고 싶다면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진짜 부자의 삶을 목격해야 합니다. 부자는 무엇을 먹고,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직접 만나보거나, 책을 읽거나, 영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그 정보를 다 모았는데도 당신이 기대했던 삶이 아니라면 절실함은 안 생길 수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만약 우연히 접한 어떤 삶이나 목표가 당신이 꿈꾸던 모습과 일치해서 가슴이 뛴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신에게는 맹렬한 절실함이 생길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절실함을 가져다줄지 모릅니다. 그러니 방 안에 앉아서 “나는 왜 절실하지 않지?”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밖으로 나가서 우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세요. 당신의 목을 마르게 할 그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