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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도전을 못하는 이유는 능력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운맛 카레]

    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3분 카레를 샀습니다. 오늘 그 카레를 먹기 위해 밥을 하고 꺼냈더니, 헉! 매운맛 카레인 겁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인가, 어머니께서 카레를 해주셨습니다. 평소 어머니의 카레는 정말 맛있지만, 그날의 카레는 너무 매워서 도저히 먹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매운맛 카레는 인간이 먹을 수 없다는 것을요.

    그 후로 단 한 번도 매운맛 카레를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실수로 매운맛 카레를 사버린 겁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그 카레를 데웠고, 혹시 몰라 냉장고에서 콜라와 우유도 꺼내 준비했습니다.

    밥에 매운맛 카레를 붓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한 입 조심스레 떠먹었습니다.

    그런데.
    응?
    맵지가 않습니다.

    다시 카레 포장지를 봅니다.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매운맛.

    전혀 맵지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그동안 매운 불닭도 잘 먹어왔는데, 유독 매운맛 카레에만 지레 겁을 내고 있었던 겁니다.

    과거에 하지 못했던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도 당연히 못할 거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일들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요?

    어릴 때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기억 때문에, 고작 허리까지 오는 얕은 물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내가 도전을 주저하는 이유는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 때문은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입니다.

    이제부터 예전에는 못했던 무언가를 한 가지씩 용기 내어 해봐야겠습니다.

    추신. 카레가 나쁜 기억을 지워준다고 하네요. 카레 많이 드세요.

  • fail 의 의미

    씨앗호떡부산떡볶이 모델 태경이가 게임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게임을 하던 아이가 레벨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하자 화면에 FAIL이라고 표시되었답니다.

    그걸 본 아이가 “아싸~” 하며 좋아하자 아빠가 물었답니다.

    “너 FAIL이 무슨 뜻인 줄 알아?”

    “응, 다시 하란 뜻이잖아.”

    그렇구나.
    FAIL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라는 뜻이구나!

  • 성공 지향 보단 도전 지향적으로 살기

    옛날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한국의 위인전을 읽지 말라고. 위인전을 읽으려면 외국 위인전을 읽으라고.

    그 이유인즉슨, 한국 위인전의 특징은 마치 천재들의 합창 같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비범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거나 소년기부터 떡잎이 달랐다는 식이다. 유아기나 청소년 시절부터 무언가 큰 끼를 보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듯한 이야기가 즐비하다.

    나는 어릴 적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딱히 남들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겨우겨우 학교생활을 버티는 수준이었고,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내가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학창 시절 내가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은 아마도 내가 오성과 한음처럼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국 위인전은 다르다고 한다. 엉뚱한 아이들, 실패한 아이들, 부족한 듯한 아이들이 나중에 모두 성공을 이룬다. 그것도 엄청난 실패를 거듭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성공 지향이 아닌 도전 지향적인 모습이다.

    지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지금 막 시작하는 창업자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위인들의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그분들의 치열한 도전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라이트 형제 805번 실패, 에디슨 147번 실패처럼 말이다.

  •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머리 위의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 머리 위에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은 그것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만약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간다면, 나는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태양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만약 태양이 지는 방향으로 걸어간다면, 나는 남들보다 태양이 늦게 질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지만, 그 기회가 진짜 나의 기회가 되는 것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이 떠오를 때 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남들보다 태양이 늦게 뜨고, 태양이 질 때 동쪽으로 걷는 사람은 남들보다 태양이 일찍 지게 마련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결정에 좌우된다.

  •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 가장 솔직한 답을 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는가’라는 논쟁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이 주제가 왜 그렇게까지 논쟁이 되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는 비교적 명확한 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의 귀천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기도 하고, 또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음식에 비유하면 훨씬 이해가 쉬워집니다.

    “투뿔 한우 등심구이와 떡볶이 중 어떤 음식이 더 맛있습니까?”
    라는 질문과 매우 비슷한 구조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투뿔 한우가 떡볶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나는 투뿔 한우보다 떡볶이가 더 맛있다.”

    이 주장에 대해 누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맛이라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회를 먹을 때 이런 말도 듣습니다.
    “진짜 회의 맛을 아는 사람은 초장이 아니라 간장에 찍어 먹는다.”

    간장에 찍어 먹어보라고 권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초장을 더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회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건 음식에 대한 기준이 아니라 사고가 꽤나 닫힌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제 아버지는 부산 사람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회입니다.
    간장, 막장, 초장을 번갈아 드시지만
    가장 선호하는 것은 여전히 막장과 초장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버지의 입맛을 두고
    “그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은
    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라는 기준으로는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존재합니다.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업의 귀천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귀천은 오직 ‘나 자신의 기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귀천’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마치 누군가를 무시하는 비도덕적인 표현처럼 느껴질 뿐,
    사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분명히 이런 구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직업이 좋다.”
    “나는 저 직업은 나와 맞지 않는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개인의 가치관이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반대로, 직업의 귀천은 또 분명히 ‘없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직업’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귀천을 따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왜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그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어떤 자부심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직업을 두고
    우열이나 귀천을 논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지극히 무지한 태도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