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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만난 사람을 말 한 마디로 무장해제 시키는 법

    저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항상 비슷한 첫인상을 듣곤 했습니다. 날카롭다, 혹은 차가워 보인다.

    제 눈이 쌍꺼풀이 없고 옆으로 약간 찢어진 눈매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야 매일 보는 친구들이 거기서 거기라 별말 없었는데, 대학에 가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동기들, 선배, 후배, 동아리 사람 등등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제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게 된 거죠.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똑같이 말했습니다. 와, 나 너 처음 봤을 때 진짜 차가워 보였어. 성격 엄청 까칠할 줄 알았어.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저런 이야기를 고백하듯 털어놓더군요. 알고 보니 너 완전 허당이네, 하나도 안 차갑네… 하면서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 첫인상에 대한 오해는 대부분 풀렸지만 문제는 그 오해가 풀리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오해가 풀릴 만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게 저는 영원히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제 눈매에 대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었고, 그 부작용으로 사람 눈을 잘 못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내 눈빛이 상대방에게 공격적이거나 기분 나쁘게 보일까 봐 겁이 났던 거죠. 그래서 자꾸 시선을 피하는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하지만 눈을 피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죠. 내 눈 좀 봐, 사람 눈 좀 보고 이야기해. 상대방은 제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듣지 않는다고 오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상대방을 처음 만났을 때, 즉시 나에 대한 경계를 풀게 할 방법이 없을까?

    해답은 대학원 수업 때 우연히 찾았습니다. 당시 수업 때 제 옆에 앉았던 동문이 있었는데, 그분도 저처럼 눈매가 매섭고 말수가 적어 보여서 처음엔 말 한마디 안 섞었습니다. 수업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너무 좋은 향기가 나는데, 알고 보니 그 옆자리 동문에게서 나는 향이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불쑥 물어봤습니다. 와… 이거 무슨 향수예요? 향이 진짜 좋은데요?

    그랬더니 그 날카로워 보였던 분이 표정이 싹 바뀌면서 환하게 웃더군요. 아, 이거 존바바토스예요. 한번 뿌려보실래요? 그러면서 아주 살갑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그냥 감사하다고 짧게 대답했는데, 그분은 이 향수를 누가 쓰는지, 자기는 언제부터 썼는지 신이 나서 계속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사심 없이 그 사람의 특징을 칭찬하고 물어봤는데,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고 마음을 여는구나.

    저는 그때부터 사람을 처음 만나면 나에 대한 경계심과 무장을 해제시키는 저만의 필살기로 이 방법을 씁니다.

    첫째, 아주 사소한 칭찬거리 하나 찾기. 둘째, 그 칭찬거리를 진심으로 부러워하기. 셋째, 질문 형식으로 물어보기.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십중팔구는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경계가 풀리며 대화의 물꼬가 시원하게 트입니다.

    특히 이런 말들이 효과가 좋습니다. 와 피부가 진짜 좋으시네요. 관리받으세요? 머리숱이 진짜 많으시네요. 파마하신 거예요? 운동하세요? 어깨가 진짜 넓으시네요.

    단순히 영혼 없는 칭찬이 아니라, 당신의 그 장점이 나는 참 부러워요라는 뉘앙스로 다가가면 상대방을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됩니다.

  • 빌려준 돈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이유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당시 가게 사장님은 제게 참 좋은 분이었고 제가 힘들 때 먹을 것도 넉넉히 챙겨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사진과 장소는 무관합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그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 가게 사정이 많이 어려워진 겁니다.

    몇 달간은 별 탈 없이 월급이 나왔는데, 언제부턴가 월급 날이 조금씩 밀리더니 결국 두 달 치 월급이 밀린 뒤에

    사장님은 이제 그만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다음 달에는 밀린 돈을 꼭 챙겨주겠노라 하셨지요.

    저는 그 후 손님으로 가게를 자주 찾아갔습니다.

    헌데, 사장님은 제가 오는 걸 점점 불편해하시는 눈치였습니다. 아마도 월급을 못 받은 알바생이라 마음이 쓰이셨던 거 같습니다.

    저도 넉넉지 못한 대학생 신분이었지만, 사장님은 제가 어릴 적 너무나 잘 챙겨주셨고 일하는 동안도 참 즐겁게 일했던 터라 어려운 결심을 하고 사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 저 힘들 때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저 안 주신 월급은 그냥 장부에서 지우세요. 저 안 받아도 됩니다.”

    저는 진심으로 안 받을 생각으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장님은 아니라고 거듭 손사래를 치시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도 거의 매일같이 가게에 들러 친구를 만나고 일했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저를 따로 부르시는 겁니다.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제게 물어보셨어요. “너 월급 못 받았다고 애들한테 이야기하고 다니니?”

    그랬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 돈을 주지 못한 사람은 그 상황 자체가 상당히 불편했던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저도 그 가게에 놀러 가지 못했습니다.

    3개월쯤 지났을까요? 그 일을 잊고 지낼 때쯤 제 통장에 밀린 월급이 입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스승의 날 선물을 사 들고 가게에 놀러 갔습니다.

    다시 점장님은 저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저도 아무런 부담 없이 놀러 갈 수 있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못 받은 사람보다 못 갚은 사람이 떠날 가능성이 큽니다.

  • 인생 망가뜨리려면 이런 사람 만나세요

    혹시 이런 고민 한번 해보셨나요? 나의 인생, 인성, 타고난 운명, 그리고 성품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져 왔고, 지금은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결국 어떤 결과물로 굳어지게 될까요?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는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곤 합니다. 지금 나의 성격이나 성품, 그리고 현재의 내 인생은 모두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었다고 말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 성격, 그 성품, 그 인생. 정말 당신이 하나하나 깊게 고민하고 결정한 결과가 맞나요?

    아마 아닐 겁니다. 만약 그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을 선택했겠지요. 지금보다 더 관대하고, 더 여유로우며, 훨씬 더 품위 있는 삶을 고르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내 모습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저는 당신이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당신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는 그저 뭉쳐진 흙덩이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타인이 당신이라는 흙덩이를 조금씩 만지고, 꾹꾹 누르고, 문지르며 변화시켰고, 그 손길들이 모여 지금의 당신이 되었을 겁니다.

    이 말은 즉, 나를 누르고 만지고 문지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내 인생은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저는 밤마다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소위 문제아였습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기였죠.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미래에 대한 계획 하나 없이,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고3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술자리에서 한 형을 알게 되었습니다.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하얀색 롱패딩을 입고 있어 마치 모델 같았는데, 알고 보니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었습니다.

    19년 인생 동안 제가 봤던 남자 중 가장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서 ‘후광’이 비친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으니까요. 철없는 고등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들려주던 대학생의 삶, 그가 말하는 모든 이야기는 제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생 이야기였습니다.

    그 만남 한 번으로 제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습니다. ‘나도 저 선배처럼 멋있는 대학생이 되고 싶다…’

    그 생각 하나로 한 달도 남지 않은 수능은 접어두고 바로 재수학원을 등록했습니다. 태어나서 무언가에 가장 열심히 매달렸던, 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만들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슷한 인생들끼리 모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원래 비슷해서 모인 걸까요, 아니면 모이다 보니 비슷해진 걸까요? 순서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 주위에서 나를 만지는 사람이 나를 조금씩 완성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어떤 사람을 곁에 두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라는 흙덩이를 만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 지은 죄는 결국 되돌아온다는 말의 의미

    “지은 죄는 다 돌려받는다”
    이 말에 대해 예전엔 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근거로 가능한 말이지?’ 하고 말이죠.

    그런데 최근 몇 차례의 일을 겪으며,
    비로소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저는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첫 학기를 마칠 무렵, 저는 결혼을 했고
    아내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말 그대로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될 즈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결국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유산을 한 것입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아내도, 저도 그 슬픔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 곁에 집중하기로 했고,
    결국 대학원 2학기는 휴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뒤,
    저는 다시 복학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학교에 돌아왔지만,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 회식 자리에서,
    교수님이 제게 막걸리 한 잔을 따라주시며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 대표, 먹튀했다더니 다시 돌아왔네? 하하.”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 제가 먹튀를 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때 들은 대답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결혼해서
    축의금만 받고 학교를 그만둔 파렴치한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학기에 복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평생 동문들 기억 속에서
    ‘먹튀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뒤에야
    동문들은 상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 소문의 시작에는 항상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늘 누군가의 뒷이야기를 만들어내던 사람,
    어디를 가든 부정적인 소문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동문들 대부분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한 번쯤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뒷담화의 주인공보다,
    뒷담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인격이 더 큰 문제라는 것
    을 말입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었을 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우리 기수에서 가장 많은 봉사를 맡아왔던 한 원우가
    마지막 학기에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원 생활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를 도맡아 했고,
    누구 하나 그의 장학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장학금 수여 당일,
    그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늘 악의적인 소문만 퍼뜨리던 그 원우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순간 강당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반응이 쏟아졌고,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원우는 단 한 번의 봉사도 하지 않았음에도
    교수님을 찾아가 사정하며
    장학금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석사 졸업식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유일하게 동문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사실상 가장 명예롭지 못한 졸업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한 청년의 브랜드에 투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개인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사람의 능력을 믿고 우리는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투자 이후 어느 정도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그는 수익을 숨긴 채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습니다.
    수차례 전화, 메시지, 메일을 보냈지만 끝내 응답은 없었고,
    결국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소송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그 청년이 사문서를 위조해 수익을 빼돌린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미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채권자 명단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결국 돌려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말입니다.

    한 번의 실수는
    운이 좋다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충분히 만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자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죄는 보이지 않게 차곡차곡 쌓이고,
    그 무게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마치 댐이 무너지듯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자기 인생으로 되돌아옵니다.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가로챘던 그 원우도,
    평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아왔다면
    그 한 번의 일로 완전히 매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뢰는 쌓이면 쌓일수록,
    나를 지켜주는 ‘댐’과 같습니다.

    작은 실수 몇 번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이 반복되어 누적되면,
    그 댐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 출장길 비행기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

    베트남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습니다.
    탑승해 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괜히 마음이 살짝 긴장됩니다.
    “제발 옆자리에 좋은 분이 앉으셨으면…”
    혼자 속으로 조용히 바라면서 말이죠.

    제 자리는 창가 쪽이었고,
    잠시 후 중년의 노부부가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제 바로 옆에 앉은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자리에 앉자마자 팔꿈치로 제 팔을 세게 한 번 쳤습니다.

    ‘아… 실수겠지.’
    그렇게 넘기려는 순간,
    또 한 번 팔꿈치가 제 팔을 건드렸습니다.

    ‘아… 이분 좀 조심성이 없으시네.
    오늘 비행, 조금 불편하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비행기는 이륙했습니다.

    어느 정도 고도가 올라갔을 때,
    승무원이 통로를 지나며 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딱히 목도 마르지 않았고,
    종이컵을 받아드는 것도 귀찮아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앉은 그 남성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반쯤 남은 종이컵을 제 간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응…? 이건 무슨 행동이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한마디 하려던 그 찰나—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그 남성의 손등을 탁 하고 세게 쳤습니다.
    남성은 그제야 놀란 표정으로 제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종이컵을 얼른 들어 올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 옆에 앉은 그 60대 남성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분이었고,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누나나 여동생쯤 되어 보였습니다.


    자리에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던 행동들,
    팔꿈치로 자꾸 제 쪽을 건드리던 일,
    종이컵을 제 테이블 위에 놓아두던 순간까지…

    저는 속으로
    ‘아… 이번 비행 5시간, 정말 힘들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폐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마음속에 차 있던 화가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전까지 이해되지 않던 모든 행동들이
    그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남성은 비행 내내 제가 보던 넷플릭스를 보겠다며
    제 휴대폰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드라마가 중간에 끊기긴 했지만,
    저는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면 다시 제 테이블 위에 휴대폰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은 옆 사람이 살짝만 건드려도 금세 신경이 날 때가 많은데,
    ‘불편한 이유’를 아는 순간, 그 불편함은 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많은 순간들 속에는,
    그 사람 역시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미 불편한 상태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시선으로 누군가를 한 번만 더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느꼈던 나의 불편한 마음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