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 행군
백령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야간 행군을 할 때의 일입니다.
야간 행군이란 말 그대로 한밤중에 행군을 하는 것인데, 백령도에서의 행군은 가로등 하나 없는 아주 새까만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 손바닥을 눈앞에 대어 보아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 같은 그런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에너지도 모두 소진된 몸에 무거운 완전 군장을 메고, 그저 바닥만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한없이 걸어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문득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어? 이게 무슨 냄새지?’
아주 기분 좋은 향기였습니다.
‘누가 향수를 뿌렸나?’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너무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누구의 향수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극도로 힘든 상황 속에서 맡게 된 이 향기가 참 좋았습니다. 켜켜이 쌓인 피로마저 눈 녹듯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더 걸어가도 그 향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로 우리를 비추며 지나갔습니다. 밝아진 시야로 주변을 돌아보니, 제가 걷고 있는 그 깜깜한 길 옆이 온통 나팔꽃 밭이었던 것입니다.
아.
화려한 장미꽃도 아니고, 값비싼 향수는 더더욱 아닌, 길가의 흔한 나팔꽃 냄새가 그토록 향기로웠던 것입니다.
어쩌면 행복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 크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것.
그저 내 바로 옆에 있는 평범한 것들도, 마음의 눈을 감고 온전히 느끼려 해보면 그것이 바로 행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