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도 군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한 경험이 아니었다.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까지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야만 가능했던 훈련소 시절은 더욱 그랬다.
그나마 종교 활동 시간이 있는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것은 유일하게 외부인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훈련병에게 종교의 자유란 없었다. 훈련병의 종교는 오직 초코파이의 통제를 받을 뿐이었다.
내가 있던 포항 훈련소는 교회가 초코파이 4개, 성당이 3개, 절이 2개였다.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에 이렇게 감사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종교 활동은 언제나 교회로 신청이 넘쳐났고, 인원이 다 차면 다음은 성당, 그다음은 절 순서였다. 군대 교회에서 먹는 초코파이의 맛이 미슐랭 별 다섯 개짜리 요리를 능가한다는 사실에 반박할 예비역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교회에서 받은 초코파이는 예배 시간 내에 모두 먹어야 했고, 절대 밖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샅샅이 주머니 검사를 했다.
예배 시간에 눈물겨운 초코파이를 허겁지겁 먹고 있을 때, 초코파이를 가만히 들고만 있을 뿐 먹지 않는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는 옆에 있던 동기들이 초코파이를 다 먹었을 무렵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나도 그에게서 하나를 받았다.
그때는 그 동기가 왜 먹지 않는지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가 되어도, 또 그다음 주가 되어도 그 동기는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주변에 나누어 주었다.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속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알레르기라도 있는 걸까? 다이어트 중인가? 아니면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침내 그 동기와 같은 시간대에 근무를 서게 되었을 때, 왜 초코파이를 먹지 않는지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 동기는 초콜릿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오히려 초코파이를 너무나 좋아할 뿐 아니라 지금도 무척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짝 내 반응을 살피더니 이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자기는 신학 공부를 하다가 군대에 왔다고 했다. 비록 군대의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자신이 교회를 가는 목적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초코파이가 될까 봐 그게 너무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아, 이 얼마나 멋있는가! 신학을 공부하며 예배를 드리는 목적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훗날 목회를 할 때 그 어떤 권력이나 부귀를 좇아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시험하는 것이었다니.
그것은 바로 본질을 잊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만약 절에서 초코파이 다섯 개를 준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대한 본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하는 목적, 일을 하는 목적, 사업을 하는 목적에 대한 그 본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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