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신뢰

  • 잊을수 없는 그날

    2010년 창업을 할 당시, 없는 자금에 사기까지 당하고 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남은 것이라곤 2002년식 중고차 한 대와 곰팡이가 가득한 원룸뿐이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즈음이었습니다.

    어차피 창업을 결심한 것, 최소한 사업자 등록증은 내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위 세무사 사무실을 찾아다녔습니다.

    마포세무서 근처의 세무사들은 후줄근한 저의 모습을 보고 그리 환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사업을 한다고 찾아왔지만, 자본도 뭣도 없다니 그저 상담하는 시간만 빼앗길 것이 뻔했겠지요.

    제가 내고 싶었던 업종과 업태로는 법인 사업자가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되었습니다.

    정말 여러 군데의 세무사 사무소를 돌아다니던 중, 한 세무사님이 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셨습니다. 제 억울하고 딱한 사정을 들으시더니, 역시나 제가 만들고 싶었던 사업자 등록증의 업종과 업태는 법인 사업자로 낼 경우 세무서에서 실사를 나갈 텐데 사무실도 없이는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혼자 곰곰이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그러고는 약간의 업종과 업태를 고쳐서 직접 세무서를 다녀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 세무서에 친한 선배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초조한 마음으로 한 시간가량 그 세무사님 사무실에서 기다렸고, 드디어 세무사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사업자 승인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말입니다.

    세무사님은 세무서에 근무하는 선배를 만나 저를 대신해 사업 설명을 하시고, 저에게 맞는 업종과 업태로 수정한 후 승인을 받아내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세무사님께 우리 회사의 세무 회계를 부탁드렸고, 6년째 저희 재무를 전담해 주고 계십니다. 저 나름의 작은 보답이지요.

    그리고 오늘, 한 여성분으로부터 택배를 받았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울증을 앓던 그분이 저를 찾아왔을 때 제가 큰 도움을 드리진 못했는데도, 당시 큰 위로가 되었다며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편지와 함께 USB 볼펜을 선물로 보내오셨습니다.

    이 볼펜에 새겨진 문구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날의 기억이 잔잔하게 떠오릅니다.

    이렇게 도움은 또 다른 도움으로 전해지고, 세상을 돌고 도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 미래에 가장 큰 능력은??

    미래에 가장 큰 능력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우선 국영수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무엇일까? IT 기술이나 인공지능 같은 대단한 기술 중 하나이겠지만, 문득 번쩍 드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착한 인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착한 인성이 필수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대단한 기술들은 어차피 언젠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보다 훨씬 더 잘 다루게 될 테니까 말이다.

    세상에는 점점 비밀이 없어지고 있다. 당장만 해도 SNS를 통해 너무나 많은 사실이 공유되고 받아들여진다.

    넘쳐나는 정보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 같지만, 과거 지상파 방송만 보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다양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언론의 장난질도 금방 들통나고 만다.

    시간이 더 지나면 팩트와 팩트가 아닌 정보는 더욱 정확히 걸러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과 기업의 윤리성도 여지없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인성이 좋은 사람, 윤리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에게 일과 돈과 시간을 맡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성이 좋은 사람은 그렇게 받은 신뢰를 바탕으로 꼼수 없이 회사와 사회에 공헌하고 이를 발전시킬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비열한 사람은 이제 무엇도 감출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죽어라 공부하는 국영수는 이제 인간이 발전시킬 분야가 당연히 아닐 것이고, 아직 알지도 못하는 미래 기술들 역시 더 이상 인간의 몫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은 더 옳고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진정한 능력자로 추대할 것이라 확신한다.

  • 즐기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세요

    친한 형님의 이야기입니다.

    형님은 10년 전 제가 일본 유학 시절에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저와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입니다.

    당시 한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형님은 ‘신뢰’라는 것에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임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형님은 거래처의 접대나 눈앞의 이익을 쫓지 않았고 탈세나 거래처 비용에 결코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미련해 보일 정도로 직책에 대한 책임감을 다하며 거래처로부터 굳건한 신뢰의 힘을 쌓아가는 과정을 저 역시 옆에서 짧게나마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형님은 일본에서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든든한 자본으로 시작하기 위해 사업 계획서 한 장을 들고 일본 정책 자금을 신청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외국인에게 그다지 관대한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약 20년에 걸친 경력과 거래처에서 인정받은 신뢰, 그리고 1엔도 누락되지 않은 투명한 세금 내역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복지를 줄이지 않으면서 이익을 모두와 나누는 회사를 제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라는 형님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일본 정책 자금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무담보 신청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심사가 끝나고 일본 심사원으로부터 마지막 연락이 왔을 때, 그가 물었다고 합니다.

    “정말 잘 해내실 수 있겠죠?”

    그 질문에 형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楽しむ気持ちで見守ってください”
    (즐기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세요)

    ps. 형님 당사자에게 미리 동의를 얻지 않은 글이라 실명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 믿는다는 것은 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믿는다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leesang_jun/221211797388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가 믿는다라고 말하는 대상은, 사실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믿는다라고 표현하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땅끝에 가면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냥 안다고 합니다. 굳이 땅끝에 바다가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외치지 않죠.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 역시 안다고 하지, 믿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거나, 어딘가 의심스러운 것들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믿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의심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믿다라는 단어는 밀다라는 의미와 아주 유사하다고요.

    저는 그 말이 신선해서 믿다의 어원이 정말 밀다에서 온 건지 이것저것 뒤져봤습니다. 비록 정확한 어원적 근거는 찾을 수 없었지만, 곱씹을수록 믿는다는 건 밀어준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아주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 준다는 것은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묵묵히 밀어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를 계속해서 밀어준다는 건 엄청난 힘과 체력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를 계속 믿어주는 일 또한 그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지금 당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나요? 누군가가 당신을 끊임없이 믿어주고 있다면, 그 사람이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면 뒤에서 당신을 밀고 있는 그 믿음은 결국 지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 빌려준 돈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이유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당시 가게 사장님은 제게 참 좋은 분이었고 제가 힘들 때 먹을 것도 넉넉히 챙겨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사진과 장소는 무관합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그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 가게 사정이 많이 어려워진 겁니다.

    몇 달간은 별 탈 없이 월급이 나왔는데, 언제부턴가 월급 날이 조금씩 밀리더니 결국 두 달 치 월급이 밀린 뒤에

    사장님은 이제 그만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다음 달에는 밀린 돈을 꼭 챙겨주겠노라 하셨지요.

    저는 그 후 손님으로 가게를 자주 찾아갔습니다.

    헌데, 사장님은 제가 오는 걸 점점 불편해하시는 눈치였습니다. 아마도 월급을 못 받은 알바생이라 마음이 쓰이셨던 거 같습니다.

    저도 넉넉지 못한 대학생 신분이었지만, 사장님은 제가 어릴 적 너무나 잘 챙겨주셨고 일하는 동안도 참 즐겁게 일했던 터라 어려운 결심을 하고 사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 저 힘들 때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저 안 주신 월급은 그냥 장부에서 지우세요. 저 안 받아도 됩니다.”

    저는 진심으로 안 받을 생각으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장님은 아니라고 거듭 손사래를 치시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도 거의 매일같이 가게에 들러 친구를 만나고 일했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저를 따로 부르시는 겁니다.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제게 물어보셨어요. “너 월급 못 받았다고 애들한테 이야기하고 다니니?”

    그랬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 돈을 주지 못한 사람은 그 상황 자체가 상당히 불편했던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저도 그 가게에 놀러 가지 못했습니다.

    3개월쯤 지났을까요? 그 일을 잊고 지낼 때쯤 제 통장에 밀린 월급이 입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스승의 날 선물을 사 들고 가게에 놀러 갔습니다.

    다시 점장님은 저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저도 아무런 부담 없이 놀러 갈 수 있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못 받은 사람보다 못 갚은 사람이 떠날 가능성이 큽니다.

  • 지은 죄는 결국 되돌아온다는 말의 의미

    “지은 죄는 다 돌려받는다”
    이 말에 대해 예전엔 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근거로 가능한 말이지?’ 하고 말이죠.

    그런데 최근 몇 차례의 일을 겪으며,
    비로소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저는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첫 학기를 마칠 무렵, 저는 결혼을 했고
    아내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말 그대로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될 즈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결국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유산을 한 것입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아내도, 저도 그 슬픔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 곁에 집중하기로 했고,
    결국 대학원 2학기는 휴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뒤,
    저는 다시 복학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학교에 돌아왔지만,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 회식 자리에서,
    교수님이 제게 막걸리 한 잔을 따라주시며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 대표, 먹튀했다더니 다시 돌아왔네? 하하.”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 제가 먹튀를 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때 들은 대답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결혼해서
    축의금만 받고 학교를 그만둔 파렴치한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학기에 복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평생 동문들 기억 속에서
    ‘먹튀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뒤에야
    동문들은 상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 소문의 시작에는 항상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늘 누군가의 뒷이야기를 만들어내던 사람,
    어디를 가든 부정적인 소문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동문들 대부분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한 번쯤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뒷담화의 주인공보다,
    뒷담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인격이 더 큰 문제라는 것
    을 말입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었을 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우리 기수에서 가장 많은 봉사를 맡아왔던 한 원우가
    마지막 학기에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원 생활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를 도맡아 했고,
    누구 하나 그의 장학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장학금 수여 당일,
    그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늘 악의적인 소문만 퍼뜨리던 그 원우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순간 강당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반응이 쏟아졌고,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원우는 단 한 번의 봉사도 하지 않았음에도
    교수님을 찾아가 사정하며
    장학금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석사 졸업식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유일하게 동문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사실상 가장 명예롭지 못한 졸업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한 청년의 브랜드에 투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개인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사람의 능력을 믿고 우리는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투자 이후 어느 정도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그는 수익을 숨긴 채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습니다.
    수차례 전화, 메시지, 메일을 보냈지만 끝내 응답은 없었고,
    결국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소송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그 청년이 사문서를 위조해 수익을 빼돌린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미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채권자 명단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결국 돌려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말입니다.

    한 번의 실수는
    운이 좋다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충분히 만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자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죄는 보이지 않게 차곡차곡 쌓이고,
    그 무게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마치 댐이 무너지듯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자기 인생으로 되돌아옵니다.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가로챘던 그 원우도,
    평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아왔다면
    그 한 번의 일로 완전히 매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뢰는 쌓이면 쌓일수록,
    나를 지켜주는 ‘댐’과 같습니다.

    작은 실수 몇 번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이 반복되어 누적되면,
    그 댐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