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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종의 미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1

    예전 직장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2년이나 근무했던 곳에서 너무나 억울하게 해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주위 동료들에게 눈총을 받을 정도로 너무도 열심히 일했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해고를 받아들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해고 통보를 받고 그날 저녁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인수인계 기간은 일주일로 합의했습니다.

    순간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나는 회사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인수인계 기간인 일주일 동안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일을 했고, 인수인계서 작성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계획했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개인 물품을 박스에 넣으며, 책상 위의 PC, 유리, 전화기, 펜꽂이 등 모든 것을 들어내고 깨끗한 걸레로 유난하게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청소는 근무하던 2년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청소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마음에 여유가 있다.’
    ‘억울하게 나가지만, 나는 여유를 가지고 나갈 수 있다.’

    개인 물품 박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외근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나와 배웅해 주었습니다.

    이 정도의 모습이라면 나는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해고된 후 3개월 동안 실업수당을 받으며 백수 생활을 이어갔고, 드디어 3개월 뒤 SN인더스트리를 설립했습니다.

    그때 마음을 함께해 준 창업 멤버들이 바로 직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팀원들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곱씹어 봅니다.

    ‘나의 마무리는 회사를 위한 것이었나, 나를 위한 것이었나.’

  • [유종지미]마지막 모습에 더 큰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직원

    [유종지미] 끝맺음이 좋아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회사에 디자이너 직원이 한 명 있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던 날이 생각나네요.

    30대 초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으로 디자인을 공부하고, 디자인 팀 신입 사원으로 들어왔던 직원이었습니다.

    어느덧 든든한 회사의 일원이자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는데, 안타깝게도 건강에 이상이 생겨 퇴사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다 마치지 못한 업무는 자진해서 끝낸 후에야 퇴근할 정도로 남다른 책임감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퇴사를 결정한 이후, 그녀의 성숙함과 책임감은 더욱 빛이 났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수시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평소보다 더욱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아주 긍정적인 태도로 인수인계를 진행했습니다.

    회사에 손님이 방문하면 가장 먼저 차를 준비해 회의실로 들어와 인사하는 모습에 저는 깊은 감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퇴사를 결정한 직원이 회사에 애착을 가지고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지난 기억을 돌이켜보면 상사로서 화도 내고 지적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참 미안하게도 그동안 제가 더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들만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건강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추신. 과거에 일을 잘했건 못했건, 결국 마지막 순간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 내가 높여야 할 사람은 없는 곳에서도 높여라

    몇 년 전 거래처 미팅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지만, 당시만 해도 꽤 유명한 마케팅 회사였다.

    대표이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분이셨는데, 당시 나는 그분의 강연을 일부러 찾아가 들을 정도로 내심 존경하고 있었다.

    미팅 담당자는 영업팀 과장님이었고, 사전에 몇 번 통화를 나누었을 때 그분은 굉장히 지적인 느낌을 주었다. 첫 미팅에서 마케팅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프로젝트 내용을 어느 정도 매듭지었을 때, 잠시 사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최 대표님은 어떤 분이세요?”

    나의 질문에 그는 생각보다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 과장의 말투에서는 대표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깎아내리듯 말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사장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서운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지금 자신이 소속된 곳의 리더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성과와 자랑을 이어갔다. 아마도 자신의 능력을 나에게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의 조직과 리더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그 회사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기 이전에, 그렇게 말하는 담당자 자신의 자격과 인성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는 것을 그때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높여야 하는 사람은 그가 없는 곳에서도 마땅히 높여야 하며, 그것이 곧 나 자신 또한 높이는 길이다.

  • 전화 속 넘어로 들리는 대 참사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꽤 중요한 계약 건이 있어 사수인 부장님과 함께 미팅에 참석했습니다.

    거래처는 우리 제품을 아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듯했고, 기분 좋게 악수를 나누며 일어설 때쯤엔 이미 계약이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회사로 돌아와 최종 계약서를 클라이언트에게 보냈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거래처 결정권자인 상무님이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부장님은 능숙하게 남은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제 정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30분 뒤, 거래처 실무 담당자가 제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와서는 돌연 계약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입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점심에 먹은 밥이 꽉 체하는 듯했습니다.
    아니 왜? 방금 전까지 분위기 최고였는데? 그리고 부장님 놔두고 왜 하필 나한테 전화를?

    저는 사정하듯 담당자에게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담당자는 몹시 난처해하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는데…
    듣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부장님은 거래처 상무님과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한 순간 혼잣말로 이렇게 내뱉으셨죠.
    “하… 이 새끼 진짜 깐깐하게 구네…”

    문제는 그 전화가 끊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부장님의 그 적나라한 뒷담화는 수화기 너머 상무님 귀에 고스란히 생중계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 부장님은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막 갈아타신 참이었습니다.
    다이어리형 스마트폰 케이스 덮개를 닫으면 당연히 통화가 종료되는 줄 아셨던 겁니다.

    결국 저는 다른 임원분을 모시고 다시 거래처로 찾아가 백배사죄를 한 끝에 겨우겨우 계약을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 아찔한 사건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순히 전화기를 제대로 끄지 않은 기계 조작 실수가 아닙니다.
    평소 전화를 끊자마자 습관적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던 부장님의 잘못된 입버릇이 불러온 참사였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에게는 철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무리 거래처나 고객이 없는 편한 자리라도 반드시 님 자를 붙여 호칭하고,
    휴대폰에 연락처를 저장할 때도 무조건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는 버릇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태도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밖으로 새어 나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 지은 죄는 결국 되돌아온다는 말의 의미

    “지은 죄는 다 돌려받는다”
    이 말에 대해 예전엔 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근거로 가능한 말이지?’ 하고 말이죠.

    그런데 최근 몇 차례의 일을 겪으며,
    비로소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저는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첫 학기를 마칠 무렵, 저는 결혼을 했고
    아내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말 그대로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될 즈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결국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유산을 한 것입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아내도, 저도 그 슬픔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 곁에 집중하기로 했고,
    결국 대학원 2학기는 휴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뒤,
    저는 다시 복학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학교에 돌아왔지만,
    그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 회식 자리에서,
    교수님이 제게 막걸리 한 잔을 따라주시며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 대표, 먹튀했다더니 다시 돌아왔네? 하하.”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 제가 먹튀를 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때 들은 대답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결혼해서
    축의금만 받고 학교를 그만둔 파렴치한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학기에 복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평생 동문들 기억 속에서
    ‘먹튀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뒤에야
    동문들은 상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 소문의 시작에는 항상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늘 누군가의 뒷이야기를 만들어내던 사람,
    어디를 가든 부정적인 소문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동문들 대부분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한 번쯤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뒷담화의 주인공보다,
    뒷담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인격이 더 큰 문제라는 것
    을 말입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었을 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우리 기수에서 가장 많은 봉사를 맡아왔던 한 원우가
    마지막 학기에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원 생활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를 도맡아 했고,
    누구 하나 그의 장학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장학금 수여 당일,
    그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늘 악의적인 소문만 퍼뜨리던 그 원우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순간 강당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반응이 쏟아졌고,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원우는 단 한 번의 봉사도 하지 않았음에도
    교수님을 찾아가 사정하며
    장학금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석사 졸업식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유일하게 동문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사실상 가장 명예롭지 못한 졸업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한 청년의 브랜드에 투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개인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사람의 능력을 믿고 우리는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투자 이후 어느 정도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그는 수익을 숨긴 채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습니다.
    수차례 전화, 메시지, 메일을 보냈지만 끝내 응답은 없었고,
    결국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소송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그 청년이 사문서를 위조해 수익을 빼돌린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미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채권자 명단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결국 돌려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말입니다.

    한 번의 실수는
    운이 좋다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는 충분히 만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자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죄는 보이지 않게 차곡차곡 쌓이고,
    그 무게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마치 댐이 무너지듯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자기 인생으로 되돌아옵니다.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가로챘던 그 원우도,
    평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아왔다면
    그 한 번의 일로 완전히 매장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뢰는 쌓이면 쌓일수록,
    나를 지켜주는 ‘댐’과 같습니다.

    작은 실수 몇 번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이 반복되어 누적되면,
    그 댐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