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를 쉽게 말하지 마라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선배님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논문을 쓰고 있다며, 간단한 설문지 하나만 작성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메일로 설문지를 받았습니다.

막상 열어본 설문지는 생각보다 양이 꽤 많았고, 언뜻 정치적인 성향을 묻는 문항들도 섞여 있어 잠시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문지 맨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설문조사를 마치고 보내주시면 파리바게뜨 미니 케이크 쿠폰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이 쿠폰은 대체 뭘까 생각하며 설문지를 마저 훑어보던 중, 때마침 선배님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설문지 빨리 작성해서 보내주면 파리바게뜨 쿠폰 보내줄게.”

저는 이 카톡을 보자마자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출장 중이라 도저히 설문지를 작성할 시간이 안 납니다.”
결국 핑계를 대고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던 마음이 왜 카톡 한 통에 갑자기 식어버린 걸까?

설문지를 끝까지 작성하는 데는 대략 20분 정도가 소요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 회사 막내 직원의 시급이 대략 12,500원입니다. 막내가 20분간 일하면 약 4,000원이고, 하필 그날이 휴일이었으니 휴일 수당으로 치면 그 시간의 노동 가치는 6,000원쯤 됩니다.
그런데 미니 케이크 쿠폰은 5,000원 정도 하니, 경제적인 가치로만 따지면 우리 회사 막내조차 거절할 만한 단가의 업무를 제안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제가 카톡을 본 짧은 찰나에 이 복잡한 시급을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거절한 것은 결코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저를 불쾌하게 만들었을까요?
아마도 선의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부탁이, 졸지에 얄팍한 대가성 거래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제안받은 대가가 엄청나게 컸다면 상황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차라리 아무런 조건 없이 진심을 담아 순수한 부탁을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랬다면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도 선의로 누군가를 도왔다는 뿌듯함과 인간적인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요.

만약 굳이 보답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이 호의로 부탁을 모두 들어준 다음에 “바쁜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조용히 쿠폰을 보내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진짜 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신화는 없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